가라앉은 탑 Sunken Tower

가라앉은 탑

비보리랩 연재 소설 · 매주 토요일 연재

천 년 전, 하늘의 제국이 떨어져 대륙 한가운데 거꾸로 박혔다. 그 탑에서 나오는 유물이 곧 힘이라, 일곱 가문이 탑 입구의 도시를 두고 다툰다.

밤, 분화구 호수 위에 선 둥근 돌탑. 아래층은 물에 잠겨 희미하게 빛나고, 물 아래 깊은 곳에서 금빛 빛기둥이 하늘로 솟는다. 둑길이 호숫가 성벽 도시로 이어진다.

프롤로그 · 10월 24일(토)

하늘이 무너진 날

못머리의 밤은 호수에서 시작된다.

해가 넘어가면 둑길의 등불이 하나씩 켜지고, 그 끝에 선 탑의 창들이 물 위로 노란 그림자를 떨군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탑 꼭대기에서 금빛 기둥이 솟는다. 물 아래 아주 깊은 곳에서 올라와 탑을 꿰뚫고 구름을 뚫는 빛. 처음 온 사람들은 그걸 보고 기도를 하거나 지갑을 꺼낸다. 이 도시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둘 다 하지 않는다.

바닥골목 사람들은 그 빛을 등불 대신 썼다. 기름값이 아까웠으니까.

"할머니, 그 얘기 해 줘요."

생선 상자에 걸터앉은 노파가 지팡이로 모닥불을 쿡 찔렀다. 불똥이 튀어 올라 빨랫줄에 걸린 젖은 셔츠 사이로 사라졌다. 노파의 머리에는 마른 잎으로 엮은 관이 얹혀 있었다. 아이들은 그 잎을 세어 본 적이 있다. 아흔아홉 장. 늘봄족은 해마다 잎을 한 장씩 더 엮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루 할머니는 적어도 아흔아홉 살이었다. 잎 한 장이 십 년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그건 믿지 않았다.

"무슨 얘기?"

"그거요. 하늘 무너진 거."

"그 얘기는 어제도 했잖니."

"어제는 렌이 중간에 잤어요."

모두 모닥불 건너편을 봤다. 열두 살 렌은 빈 등바구니를 등에 멘 채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짐꾼 아이들은 등바구니를 몸에서 떼지 않는다. 떼면 누가 가져간다.

"안 잤어." 렌이 말했다. "세고 있었어."

"뭘?"

"둑길 등불. 마흔셋 개야. 어제는 마흔네 개였는데."

이루가 웃었다. 웃을 때 팔뚝의 나이테 무늬가 같이 접혔다.

"좋아. 셀 줄 아는 아이가 있으니 처음부터 제대로 하자꾸나."

노파는 지팡이를 무릎에 가로 눕혔다. 이야기를 시작할 때마다 하는 버릇이었다.

"옛날 옛적, 땅이 없던 때 이야기란다. 바다와 하늘뿐이었지. 그 바다 위에 첫 용이 몸을 누이고 잠들었어. 얼마나 오래 잤는지 등에 흙이 쌓이고, 흙 위로 비가 내리고, 비가 고여 강이 되었단다."

"그게 여기예요?"

"너희가 지금 깔고 앉은 게 용의 등이야. 그래서 이 땅을 용등이라 부르지."

한 아이가 엉덩이를 들썩였다. 이루는 못 본 척했다.

"용이 내쉰 숨에서 숲이 돋았고, 숲에서 우리가 났어. 늘봄족이. 용의 뼈는 산이 되었는데, 그 뼈에 처음으로 글을 새긴 이들이 새김족이 되었지. 그 사람들이 지금도 너희 칼에 글을 새겨 주는 거란다. 돈을 받고."

"비싸요."

"비싸지. 그리고 용의 피는 강이 되었어. 강가에 모여 불을 피우고, 불 앞에서 남의 얘기를 듣던 이들이 사람이 되었단다."

이루가 아이들을 둘러봤다. 아이들은 불 앞에서 남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하늘에도 사람이 살았어. 천인이라고. 별빛을 마시고 살았지. 구름 위에 뜬 섬들을 은사슬로 묶어서 나라를 세웠는데, 그게 윗누리 제국이야. 제국 한가운데에는 별까지 닿는 은빛 첨탑이 있었단다. 별바늘. 천인들은 그 바늘 끝에서 별빛을 길어 마셨어."

"맛있었어요?"

"이천 년을 마셨으니 맛있었겠지. 문제는 별도 닳는다는 거야."

이루가 지팡이 끝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아이들이 따라 올려다봤다. 못머리의 하늘에는 별이 몇 개 없었다. 빛기둥 때문이라고 어른들은 말했다.

"별이 하나둘 꺼지자 마지막 황제 세르반은 밤마다 잠을 못 잤어. 그러다 어느 밤, 발밑에서 소리를 들었단다."

노파가 지팡이로 땅을 두 번 쳤다. 쿵. 쿵.

"용의 심장이야. 그 한가운데에는 세상이 생길 때부터 한 번도 꺼진 적 없는 불이 타고 있었어. 첫 불. 황제는 생각했지. 별이 다 꺼지면 저걸 마시면 되겠다."

"그래서요?"

"그래서 바늘을 뒤집으라고 했어."

모닥불이 탁 하고 튀었다.

"천인들은 섬을 통째로 뒤집었어. 별을 향하던 바늘 끝이 땅을 향하게. 그리고 내리꽂았지. 바늘은 용의 등을 한 층 뚫고, 또 한 층 뚫고 내려갔어. 바늘을 몰던 마법사들이 무릎을 꿇고 빌었단다. 폐하, 이제 그만. 용이 깹니다. 그럴 때마다 황제는 딱 한 마디만 했어."

아이들이 한꺼번에 숨을 들이켰다. 다들 이 대목을 알았다.

"한 층만 더."

이루가 잠깐 말을 멈췄다. 렌이 등불 세던 것을 그만두고 노파를 봤다.

"바늘 끝이 심장에 닿은 순간, 첫 용이 처음으로 눈을 떴단다. 그리고 딱 한 번 뒤척였어. 딱 한 번. 그 한 번에 하늘의 섬들이 전부 떨어졌지. 불붙은 섬들이 별똥처럼 이 땅에 쏟아졌어. 천인들도 같이. 그게 천 년 전, 하늘이 무너진 날이야."

"황제는요?"

"아무도 몰라. 바늘 끝, 첫 불 곁에 아직 있다는 사람도 있지." 이루가 어깨를 으쓱했다. "용은 심장에 바늘이 박힌 채 다시 잠들었어. 큰잠이라고 해. 바늘이 박힌 자리에는 물이 차올라 호수가 되었고, 물 위로는 바늘 밑동만 남았단다. 우리 늘봄족은 그 호수를 하늘못이라 부르고, 너희 사람들은 저걸."

노파가 호수 쪽을 가리켰다. 금빛 기둥이 서 있었다.

"가라앉은 탑이라 부르지."

"그럼 저 빛은요?"

"첫 불이 바늘 속을 타고 올라오는 거야. 용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지. 그리고 그 상처로 용의 꿈이 새어 나왔어. 탑 안을 떠도는 짐승들, 꿈짐승은 전부 용이 꾸는 악몽이란다. 층마다 다른 꿈을 꾸지. 탑 안에는 천인들이 남긴 보물도 층층이 잠들어 있어. 깊이 내려갈수록 오래되고, 귀하고."

"무서운 것!"

"그래. 무서운 것."

"그다음은 내가 알아요." 제일 작은 아이가 손을 들었다. "칠백 년 뒤에 일곱 사람이 들어갔다가 살아 나왔어요. 유물을 하나씩 갖고요. 그래서 일곱 가문이 생겼어요. 모르반, 바렌, 일레스."

"세렌, 케일, 카르스." 다른 아이가 받았다.

"그리고?" 이루가 물었다.

아이들이 서로 쳐다봤다. 아무도 일곱째를 몰랐다. 맹약관 벽에 걸린 커다란 벽화에도 여섯 사람뿐이었다. 일곱째 자리는 회칠로 덮여 있었다.

"그건 내일." 이루가 말했다. "그래서 못머리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단다. 한 층만 더 내려가는 놈은."

"안 돌아온다!"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렌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렌의 아버지는 석 달 전에 탑에 들어갔다. 일레스 상회의 짐을 지고, 3층까지만 다녀오겠다고 했다. 상회는 돌아오지 않은 짐값을 렌에게 청구했다. 아버지 이름이 적힌 차용증과 함께.

그때 땅이 흔들렸다.

모닥불이 옆으로 누웠고, 빨랫줄이 출렁였고, 지붕에서 먼지가 비처럼 떨어졌다.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루의 치마에 매달렸다. 흔들림은 금방 멎었다. 못머리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용이 뒤척이는 거라고, 요즘 들어 자주 뒤척인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렌은 호수를 봤다.

금빛 기둥이 한 번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렌은 버릇처럼 셌다. 하나, 둘, 셋. 빛이 꺼져 있던 시간. 그리고 둑길 등불을 다시 셌다.

마흔두 개였다.

이루는 아이들의 등을 토닥이며 렌 쪽을 보지 않았다. 대신 아주 작은 소리로, 늘봄족 말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렌은 그 말을 몰랐다. 그 뜻을 알게 되는 건 한참 뒤의 일이다.

못이 뽑히는 날, 용이 일어나 하늘을 다시 연다.

다음 회 · 1화 「바닥골목」 · 10월 31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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