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10월 26일(월)
바닥골목
렌은 뛰면서 셌다.
왼쪽 셋째 골목. 빨랫줄 일곱 개 밑. 생선 상자 두 줄 사이로 열네 걸음. 아침의 바닥골목은 밤새 고인 생선 기름으로 미끄러웠고, 젖은 그물마다 짠 냄새가 배어 있었다. 호수 쪽 하늘에서는 밤새 서 있던 금빛 기둥이 막 옅어지는 참이었다. 렌은 겁이 많았다. 겁 많은 짐꾼은 길을 잘 외운다. 골목은 하루도 같은 모양인 날이 없었지만 렌의 발은 날마다 다시 셌다.
등에 멘 등바구니가 엉덩이를 쳤다. 열두 살 때부터 지던 바구니였다. 끈을 네 번, 바닥을 두 번 갈았다. 처음 것으로 남은 건 테두리뿐이었다.
뒤에서 장화 소리가 났다. 세 켤레.
"렌! 오늘이 스무날인 건 알 거고!"
토빈이었다. 일레스 상회에서 바닥골목 빚을 거두는 사람. 목소리가 가늘고 높아서 골목 끝까지 잘 들렸다. 뒤따르는 덩치 둘은 말이 없었다. 말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렌의 품에는 은화 다섯 닢이 있었다. 이달 이자는 일곱 닢. 두 닢이 모자랐다. 은화 한 닢은 구리 스무 닢이고, 둑길 짐삯은 하루 구리 열두 닢이다. 두 닢을 벌려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날라도 나흘이 걸렸다.
생선 비늘이 깔린 모퉁이를 렌은 꺾어 돌았다. 거기서 셈이 끊겼다.
모퉁이 너머에 사람이 있었다. 렌은 그 사람과 한 덩어리가 되어 넘어졌다. 등바구니가 먼저 바닥에 닿았고, 렌이 그 위에, 상대가 렌 위에 떨어졌다. 쇠붙이 하나가 정강이를 때렸다. 칼집이었다. 주인의 키에 비해 한 뼘은 긴 칼이 칼집째 렌의 다리 위에 가로누워 있었다. 상대에게서 바닥골목에 없는 냄새가 났다. 오래 닫아 둔 삼나무 장롱 냄새.
"눈은 장식으로 달고 다녀요?"
여자였다. 렌보다 한두 살 위로 보였다. 소매 끝이 해진 회색 망토를 둘렀는데, 왼쪽 깃에 실밥 자국이 동그랗게 남아 있었다. 무언가 수놓여 있다가 뜯겨 나간 자리였다. 여자는 칼을 짚고 일어나려다 칼집 끝이 생선 상자에 걸려 한 번 더 주저앉았다. 칼자루를 쥔 손가락 마디에는 굳은살이 하나도 없었다.
장화 소리가 모퉁이를 돌았다.
"여기 있고." 토빈이 숨을 고르며 장부를 펼쳤다. 모서리가 손때로 까맣게 반들거리는 장부였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두 장을 넘겼다. "바닥골목 렌. 아버지 짐값 남은 게 은화 백서른여섯 닢이고, 이달 이자가 일곱 닢이고, 해 지기 전까지고."
렌은 일어나 앉아 주머니를 털었다. 손바닥에 은화가 쏟아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센다고 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렌은 셌다.
여섯 해 동안 이자로 낸 은화가 사백아흔 닢 남짓이었다. 그런데 빚은 처음보다 열여섯 닢이 늘어 있었다. 렌은 그 셈을 일 년에 한 번만 했다. 자주 하면 잠이 오지 않았다.
"다섯. 나머지 둘은 나흘 뒤."
"나흘이면 늦은 값이 하루 구리 세 닢이고, 그럼 열두 닢이고."
"알아."
"아는 사람이 늘 모자란 게 신기하고." 토빈이 손을 내밀었다.
그 손과 렌 사이로 여자가 들어섰다. 칼자루에 손을 얹고.
"이 사람, 제 짐꾼입니다."
렌은 여자의 뒤통수를 봤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방금 고용했어요. 탑에 내려가기로 한 짐꾼한테는 그날 빚을 거두지 않는 게 못머리 관례로 압니다."
토빈이 장부에서 눈을 들었다. 여자의 얼굴을 보고, 망토 깃의 실밥 자국을 봤다. 그리고 웃었다.
"그 관례는 백 년 전에 없어졌고. 로웬가하고 같이 없어졌고." 토빈이 장부를 한참 뒤로 넘겼다. "로웬가 막내 아가씨 맞으시고? 아가씨 댁 대문 빗장까지 우리 상회 장부에 적혀 있고."
"그 장부, 내가 찢어 버릴 거야."
여자가 칼을 뽑았다. 칼은 반쯤 나오다 멈췄다. 칼집 입구의 쇠테가 찌그러져 있었다. 여자가 한 번 더 당겼다. 칼은 꿈쩍하지 않았다. 덩치 둘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렌의 무릎이 먼저 알고 후들거렸다.
"찢어 버릴 겁니다." 여자가 말을 고쳤다. 칼은 여전히 반만 나와 있었다.
렌은 여자 옆을 돌아 토빈의 손바닥에 은화 다섯 닢을 놓았다. 손이 떨려서 한 닢이 미끄러졌고, 렌은 그걸 주워 다시 놓았다.
"다섯. 나흘 뒤에 둘하고 구리 열둘."
토빈은 은화를 한 닢씩 이로 깨물어 보고 장부에 적었다. 다 적고 나서 반쯤 나온 칼날을 보고 혀를 찼다.
"그 칼도 장부에 있고. 탑에서 잃어버리시면 그것도 갚으셔야 하고." 토빈이 장부를 덮고 렌의 등바구니를 턱으로 가리켰다. "아버님은 3층까지만 간다 하셨고. 아드님은 몇 층까지만이고?"
장화 소리가 멀어졌다.
여자는 반쯤 나온 칼을 도로 밀어 넣으려 애썼다. 칼은 들어가지도 않았다. 렌이 칼집 끝을 잡고 비스듬히 기울이자 칼이 쑥 들어갔다. 쇠테가 찌그러진 쪽을 피하면 되는 일이었다.
"고마워요." 여자가 망토를 털었다. 생선 비늘이 떨어졌다. "에이린입니다. 들으신 대로 로웬가."
"렌."
"알아요. 둑길 등불 세는 짐꾼. 짐꾼 자리에서 다들 그렇게 부르던데요."
골목 입구 쪽으로 짐꾼들이 아침마다 모여 앉는 돌계단이 보였다. 그 너머로 둑길이 호수를 가로질러 탑 밑동까지 뻗어 있었다. 열댓 명이 바구니를 끼고 계단에 앉아 이쪽을 구경하고 있었다. 늙은 짐꾼 하나가 소리쳤다.
"렌, 그 아가씨 아침부터 열한 명한테 물었다! 다 싫다 했어!"
에이린의 귀가 빨개졌다. 그래도 렌을 똑바로 봤다.
"그러니까 당신이 열두 번째예요. 탑 1층까지만. 돈은 나중에."
"나중이 언제야."
"탑에서 나온 걸 팔면요."
"아무것도 안 나오면."
"그럼 그보다 나중에요." 에이린은 그 말을 하면서도 턱을 내리지 않았다.
렌은 셈을 했다. 버릇이었다.
1층 짐꾼 삯은 하루 은화 두 닢, 선금이 시세다. 1층은 해 뜰 때 문으로 들어가 해 질 때 나오는 길이니 하루. 그 하루 둑길 일을 빠지면 구리 열두 닢이 날아간다. 이자 늦은 값은 그대로 붙는다. 지난달 둑길 끝 탑 문으로 들어간 짐꾼이 예순한 명, 나온 짐꾼이 쉰여섯 명이었다. 다섯이 비었다. 열두 명에 하나꼴. 칼을 못 뽑는 주인을 따라가면 열둘에 하나가 아니라 열에 하나쯤으로 봐야 했다. 그리고 로웬가의 나중에는 백 년째 나중이었다.
손해였다. 어느 쪽으로 더해도.
"왜 나야." 렌이 물었다. "셈을 할 줄 아는 짐꾼이면 다 싫다고 했을 텐데."
"그래서요." 에이린이 망토 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가, 펴지 않고 도로 넣었다. "1층에서 세어야 할 게 있어요. 그런데 저는 세다 보면 꼭 하나가 비어요. 몇 번을 다시 세도."
"그건 잘못 센 거야."
"그러니까 당신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에이린이 턱을 들었다. "어젯밤 둑길 등불은 몇 개였어요?"
"서른아홉."
"언제부터 셌어요?"
"마흔넷일 때부터."
열두 살 때였다. 전날 마흔넷이던 등불이 그날 밤 마흔셋이었고, 땅이 한 번 흔들린 뒤에는 마흔둘이었다. 그 뒤로 여섯 해 동안 세 개가 더 줄었다. 새로 다는 사람은 없었다.
"다섯이 줄어드는 동안 하룻밤도 안 빼먹었어요?"
"응."
"왜 줄어드는지는요?"
"몰라. 세기만 해."
이루 할머니한테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대답 대신 늘봄족 말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노래가 무슨 뜻인지 렌은 아직 몰랐다.
"그럼 돼요." 에이린이 말했다. "세기만 하면 돼요."
렌은 돌계단을 봤다. 열한 명이 셈을 하고 싫다 했다. 렌도 셈을 했다. 셈은 같았다.
셈에 넣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여섯 해 동안 렌은 둑길 끝까지만 짐을 졌다. 탑 문 앞에 짐을 내려놓고, 문 안으로 들어가는 짐꾼들의 등을 보고, 빈 바구니로 돌아왔다. 문턱 돌에는 짐꾼들 발에 닳은 홈이 패어 있었다. 렌은 그 홈을 한 번도 넘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넘은 문턱이었다.
"짐 줘." 렌이 말했다.
에이린이 눈을 깜박였다. "네?"
"짐꾼이잖아. 짐을 받아야 지지."
에이린이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대신 망토 깃의 실밥 자국을 엄지로 한 번 쓸었다.
돌계단 쪽에서 누가 휘파람을 불었다. "1층까지만이래!" 웃음이 터졌다. 늙은 짐꾼이 무릎을 치며 노래하듯 말했다. "한 층만 더 내려가는 놈은." 계단의 짐꾼들이 한목소리로 받았다. "안 돌아온다!"
렌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 열두 살 때도 그 말에는 입을 다물었다.
에이린이 등에 메고 있던 자루를 내렸다. 렌은 자루를 열어 등바구니에 옮겨 담았다. 짐꾼은 남의 짐을 담을 때 하나하나 센다. 나중에 없어졌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물주머니 둘. 초 여섯 자루. 밧줄 한 사리, 서른 발. 손바닥만 한 쇠 긁개 하나. 벽에 붙은 이끼나 회칠을 긁어낼 때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름종이에 싼 마른빵. 종이 틈으로 묵은 밀 냄새가 났다.
렌은 빵을 셌다.
열두 덩이였다.
한 사람이 하루 한 덩이. 두 사람이면 엿새.
렌은 고개를 들었다. 에이린은 벌써 골목 입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칼집 끝이 돌바닥에 끌려 딸그락거렸다. 렌은 바구니를 메고 뒤를 따랐다. 셈은 끝났는데 숫자 하나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섯 해하고 석 달 전, 3층까지만 다녀오겠다던 아버지의 바구니에 렌이 제 손으로 세어 넣은 빵도 엿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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